50년 만에 만난 상병과 사관생도

 

50년 만에 만난 상병과 사관생도

 

흰머리 늘었지만 눈빛은 그대로


1969년, 나는 해군상병으로서 해군APD-81함에 근무하고 있었다. 11월에는 해군사관학교 3학년생들이 우리배에 타서 연안실습훈련을 했다. 당시 많은 사관생도 중 나는 김덕수 사관생도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인물도 잘 생기고 똑똑한 데다 대화를 해보니 참 좋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서로의 위치는 달랐지만 호감을 가졌다. 훈련을 마칠 무렵 그는 나의 노트에 글을 적어주었다. 그의 글씨체는 힘이 있고 명쾌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탓에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당시의 나에게 좋은 지침이 되는 내용이라 오래도록 기억하고 곱씹었다.
그로부터 50년 후,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인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이 “자네와 비슷한 시기에 해군에 있었던 사람 같은데…”라며 전화를 바꿔주었다. 통성명을 했다. 김덕수, 바로 그였다. 전화를 받고는 일정을 바꿔서라도 그를 만나러 갔다. 그렇게 우리는 50년 만에 만났다. 스물둘의 청년에서 일흔이 넘은 초로의 남자로 마주 앉았다. 이제 노신사가 된 그지만 눈빛과 얼굴, 그리고 풍기는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우리는 일정을 짜고 지난 11월 20일 경남진해의 해군사령부를 방문했다. 가기 며칠 전부터 스물둘의 청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설레서 잠을 설쳤다. 해군사령부 바다가 보이는 곳에 그와 둘이 서니 정말 우리는 스물둘 딱 그때의 기분이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떨려오며 지난날이 떠올랐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 스물둘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발동기를 제작하는 조양철공소에 들어갔다. 견습 3년이 지나야 선반공이 되는데 몇 달을 앞두고 접어야했다. 이후 지금의 삼성상회터 자리에서 공구노점상을 하다가 해군에 입대했다. 별로 되는 일이 없던 내가 해군에 들어가서는 내 세상을 만난 것처럼 즐겁고 신났다. 내가 속한 기관병과는 선반 보루방 용접 등 배의 모든 일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부서였다. 철공소에서 못다 배운 기계며 배관 수리까지 맘껏 접할 수 있었고 하사관들이 일 년 이상 공부해 온 책을 보며 지식을 배울 수 있었다. 부대의 사람들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최수병’을 불렀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던 나였는데, 군대에서는 나를 인정해주고 믿어주는 것 같아 비로소 힘이 났다. 나는 신이 나 더 열심히 했다. 부대 사람들이 나를 사관학교 출신자처럼 철저하게 일을 한다 하여 ‘사병사관생도’라 불렀다. 나는 그곳에서 많이 성장하고 많이 배웠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났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김덕수 사관생도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소장까지 역임했다. 해군으로서 최고의 영예로운 자리까지 갔다. 역시 그때 내가 사람을 알아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해군사관생도들은 걸음걸이부터 다른 장교들과는 남달랐던 것도 생각난다.  

 

해군에서 배웠습니다!… 공구보감 선물

 
50년 만에 만난 그는 나를 해군함대 사령부로 초대했다. 잠수함 사령부와 잠수함을 승선하는 영광을 갖게 해 주었다. 잠수함 사령부는 국가전략부대로서 아주 중요한 곳이다. 그곳에서 정일식 사령관으로부터 따뜻하고 융숭한 대접과 안내를 받았다. 내가 근무할 때는 우리해군에 잠수함이 한 척도 없었는데 지금은 우리해군의 국방력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수준이었다. 잠수함 내부에는 온통 기계와 장비, 무기가 가득했으며 정비를 위한 공구가 많았다. 나는 사령부와 각 함대에 ‘한국산업공구보감’을 선물했다. 이 공구보감이 모든 군함마다 한 권씩은 꼭 있어야 한다고 본다. 책을 전달하며 미리 써간 편지를 읽었다. “해군 근무 시 해군 기관병과에서 배웠던 공구기술과 지식을 더하여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최고의 해군이 되어주시고 우리나라도 튼튼히 지켜주십시오.” 이 구절에서 참석자 모두 크게 박수를 쳤다.
이어 이지스함과 해군사관학교도 방문해 해군의 많은 모습을 보았다. 김덕수 생도는 내가 가는 곳마다 친절히 안내해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정말 귀한 인연이다. 마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귀한 인연은 다시 만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들을 만난다. 항상 귀하게 여기고 잘 간직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간 어려움을 이기며 열심히 살았고 나름 성공도 했다. 그는 군인으로서 영예로운 삶을 살았다. 덕분에 영화처럼 다시 만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는 그와 친구가 되고 싶다. 같이 식사도 하고 같이 여행도 하면 좋을 것 같다.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귀한 인연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나는 사업을 하면서도 항상 머릿속에 똑똑하고 지혜로웠던 청년 김덕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떠올리며 노력하다보니 나 자신도 발전할 수 있었다. 혹 이 글을 읽는 독자여러분 또한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렇게 빛나는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만난다. 열심히 또 최선을 다해 살아야할 이유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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