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가 인정한 절삭업체 ㈜비피케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수출 성장하는 절삭업체

 

㈜비피케이

 

 

 

 

(주)비피케이는 1988년 창립하여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에 인텍스블 드릴, 밀링 커터, 인스트 등 고품질의 절삭 공구를 제조 생산 판매하는 기업이다. 특히 뛰어난 금속가공기술력을 가진 제조사로 유명하다.

 

 

기업 기술력의 기반은 사람

 
(주)비피케이의 윤성덕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 CEO다. 금속을 가공하는 범용선반, CNC선반 기술을 배워 1988년 (주)비피케이의 전신인 ‘한국정밀’을 설립한다. 직원도 없이 동생과 함께 시작한 작은 공장이었다. 사업 시작의 기반은 가공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유일했다.
“저희 회사의 큰 강점은 금속 가공기술, 열처리 입니다. 변치 않는 뛰어난 품질의 정밀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하죠. 우리가 기술력을 보유한 것은 베테랑이라고 생각하는 저희 직원들이 있어서 입니다. 사실 생산 설비는 돈만 있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마련 할 수 있거든요. 반면 정밀한 기기 설비를 잘 다루는 사람은 당장 구하기가 어렵죠. 사람이 중요합니다. 저 말고도 기술을 중시하는 기업인이라면 함께 일하는 직원이 기술력의 원천이고 소중한 존재라고 말 할 것입니다. 저희 회사가 추구하는 것은 장인정신을 가지고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좋은 절삭 제품은 좋은 재질의 소재를 찾아 정밀한 가공기술로 형상을 만들고 이후 훌륭한 열처리가 더해져 탄생한다. 비피케이의 제품도 마찬가지다. 1개의 완벽하게 개발 제작하기 위해 3년이 넘도록 몰두하기도 한다.  

 

 

독일산 절삭공구 따라잡은 첫 제품

 
1958년생의 윤성덕 대표는 10대 20대 때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다양한 금속 가공 제품을 제작하는 노하우를 익혔다. 그래서 80년대 후반 당시 외국산 제품을 대체하는 절삭제품 ‘Square shoulder milling cutter’를 개발할 수 있었다.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는 제품들 중에 독일산 드릴을 제가 만들 수 있는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서울 영등포 지역의 공구상 사장님들로부터 여러가지 조언을 듣고 보고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이 있어 가장 노릇을 빨리 해야 했습니다. 10대 시절부터 가장 노릇을 해야 했죠. 그래서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이 세상에 내어 놓은 첫 제품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성능은 독일산 절삭공구와 비슷하면서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했거든요.”
20대 젊은 엔지니어가 시장에 선보인 놓은 제품은 시장에 큰 인기를 끈다. 80년 대 후반은 비싼 외산 제품을 대체 할 제대로 된 국산 절삭 제품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 이후 인서트와 같은 소모품을 만들어 매출을 올리는 전략을 사용했다. 매년 제품을 개발해 볼커터, 헬리컬 커터, 엔드밀 커터, 보링바 등 신제품을 시장에 선보이며 국내 절삭 공구업계의 한축을 차지한다. 33년의 긴 세월동안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해 현재 비피케이는 오래된 회사 역사만큼 대표적인 제품도 많다.  

 

 

3천여 제품 제작 기술력 보유

 
비피케이는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기에 지속적으로 성장 할 수 있었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못 만드는 제품이 없기에 그 소문을 듣고 해외에서도 OEM생산 주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몇 개의 제품만 올인 해서는 매출을 지속적으로 올리기 어렵습니다. A제품이 시장에 유통되어도 다른 B제품을 개발해야 기업이 성장하죠. 기존 생산설비와 기술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선보여야 합니다. 특정 제품이 시장의 인기를 끌면 다른 회사에서도 금방 따라서 비슷한 제품을 개발해 선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가격은 저렴하지만 품질은 높아야 하죠. 그래야 시장에서 살아남습니다. 그것이 기술력이죠. 동시에 여러 제품을 생산하는 능력도 갖춰야 하고요.”
윤성덕 대표는 비피케이에서 몇 년을 일한 엔지니어는 회사를 그만두고 어디를 가도 실력 인정을 받는다고 자부한다. 직원 교육과 기술습득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서다.
“기껏 기술을 가르친 직원이 나가면 손해 아니냐고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술보국은 애국입니다. 저희 회사의 직원은 전부 한국인이에요. 절삭가공 기술이 이 나라에 발전하려면 직원이 한국인이어야 하죠. 우리 직원은 대부분 10년 20년 하는 직원들인데 나라의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을 익힌 한국인이 많아져야 한국의 기술력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해외 진출로 해외에서 큰 인기

 
국내에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던 비피케이는 1997년 IMF이후 수출로 새로운 성장을 모색한다. 이미 국내에서 인정받았기에 해외의 인정도 받고 싶었다. 해외 수출을 위해 2000년도에는 한국정밀이라는 사명 대신 The Best Power tool in Korea를 뜻하는 BPK(비피케이)로 사명을 바꾼다.
“인구 오천만의 시장은 한계가 있습니다. 해외 수출에 뜻을 두고 좋은 인재를 영입해 수출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물론 힘들었지만 저희 회사의 기술력이 담긴 제품을 해외전시회에서 선보이니 주문이 들어오더라고요. OEM이라고 하죠? 해외의 대형 유통사에서도 저희 제품을 인정하고 OEM 제품 주문이 들어오더군요. 그랬더니 일본의 절삭 기업체에서 저희 회사를 방문해 살펴보기도 했죠. 국내뿐만이 아니라 우리 제품이 세계에서 통한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습니다.”
지금도 비피케이는 국내 시장의 매출보다 해외매출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13년에는 1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고 2021년에는 300만불 수출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국내외 수백개 거래처에서 인정하고 찾는 BPK의 제품은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한국을 비롯해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글·사진 _ 한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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