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 용건재 정병호 대표

 

건자재상이 공구 팔게 된 이유는? 

 

충남 아산 용건재 정병호 대표

   

  

  

  

 

지역에서 필요한 자재, 농기계, 집수리 용품까지 없는 게 없는 곳. 여름이면 시원한 얼음물, 겨울이면 뜨끈한 커피를 제공하는 인심 좋은 용건재가 공구까지 취급하게 된 이유를 들어봤다.

 

 

건축자재, 농기계, 공구까지 다 있는 만물상


영인산 자연휴양림과 농공단지 등이 들어서있는 충남 아산 영인면. 이곳에 용건재가 터줏대감처럼 자리해 있다. 매장 안팎과 창고에는 각종 건축 자재와 농기구, 공구, 산업용품들까지 수만 가지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농번기에는 호스, 펌프, 각종 농기계들을, 겨울에는 삽, 염화칼슘 등 계절상품을 더 준비한다. 인적이 드물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가게 안은 드나드는 손님들로 쉴 틈이 없었다.
“관공서, 제조사 납품도 하지만 소매 손님들이 많이 오세요. 전원주택 건설, 설비, 현장 근무자 분들도 오시고요. 농촌 지역이라서 집집마다 농사를 짓거나, 수리에 필요한 물건을 많이 찾으세요. 목재, 합판, 시멘트, 벽돌 등 자재와 농기구, 철물 공구까지 골고루 다 구비를 하고 있습니다.” 

 

 

2세경영하며 품목 확대, 전산화, 가격표 부착까지

 
지역에서 역사와 규모로 알려진 용건재가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구색을 갖추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창업자인 아버지 정순태 씨, 어머니 김선호 씨를 뒤이어 정병호 대표가 14년째 경영을 맡아오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원래 자재 쪽만 취급했다가 시스템이 잘 갖춰진 큰 도매상들을 알게 되면서 공구도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주문하면 다음날 택배가 도착하거든요. 그러면서 공구 찾는 손님이 늘었고, 자재와 함께 구매하실 수 있어서 편리해하세요.”
공구를 취급하면서 디스플레이도 다채로워졌다. 신상품, 계절상품, 쉽게 집어갈 수 있는 제품을 앞쪽에 배치했다. 기존 아버지의 건축으로 세워진 건물 벽면과 목재 진열대 옆에 정 대표가 철제 진열장을 추가하며 믹스매치한 구조가 됐다.
“비어있던 앞쪽 진열장에 수공구, 전동공구들을 점점 채워갔죠. 가게가 넓은데도 이제 공구를 더 넣을 공간이 부족해졌어요. 절삭, 유압 제품을 찾는 손님이 많아져서 품목을 더 늘려가고 싶어요.”
이와 함께 전산화도 구축했다. 기존 수기 거래명세서와 세금계산서를 전자 장부로 바꿨고, 재고와 거래처 관리가 수월해졌다. 전제품은 표준가격제로 가격표를 부착해두고 있다. 간단해 보이지만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 혼동 없이 제품을 신뢰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준다.
“제가 가게를 비울 땐 부모님께서 일을 봐주세요. 1만개 넘는 품목을 취급하는데, 컴퓨터를 이용하기도 어려우시고 가격을 다 기억할 수 없잖아요. 손님도 제품 가격을 바로 알 수 있어서 좋고요. 가격표는 새 품목이 들어올 때마다 틈틈이 붙이고 있어요.” 

 

 

맨땅에 부딪히며 성장시킨 부모님이 큰 힘

 
용건재가 지금까지 성장해온 데에는 어머니 김선호 씨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창업 당시부터 건축 일을 나가는 남편을 도와 거의 혼자서 용건재를 키워왔다. 40여년 경력의 베테랑으로 건자재에 관해선 모르는 것이 없다. 단골손님들은 그의 인맥이 중심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대표도 어머니를 보고 많이 배웠다. 그는 후회 없이 열심히 이뤄온 매장이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논 3천 평을 팔아서 조그맣게 시작했어요. 벼가 누렇게 익은 땅을 그대로 팔아서 처음엔 다들 미쳤다고 그랬죠. PVC, 스티로폼 같은 자재들을 온양에서 꾸러미로 사다가 날라서 팔았어요. 지금은 제품을 눈대중으로 보면 다 알지만 옛날에는 규격 재려고 늘 자를 들고 다닐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거든. 지금 같은 도매상도 없고 나까마 통해서 주먹구구식으로 사고팔았어요. 돈 없으면 마이너스 통장에서 계속 빼가면서 몇 년을 빚 갚느라 고생했어요. 떼이기도 많이 떼이고.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시골에 집수리를 크게 하면서 샷시, 정화조가 한 트럭씩 팔려나가는 거야. 그렇게 빚을 다 갚고 1년 딱 장사하니까 1억이 모였어요. 그러면서 나중엔 가게도 옮기고 이만큼 키워온 거예요.”
정 대표는 새롭게 경영을 이어가며 건재상 이미지를 종합상사로 전환하기 위해 상호변경을 시도했으나, 오랜 세월 ‘용건재’라는 이름으로 통해왔기에 바꿀 수 없었다는 일화도 전했다. 

 

 

파는 것보다 중요한 수금

 
이러한 사업 기반은 용건재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지만 스물일곱의 나이로 대표 자리를 맡게 된 그에겐 그만큼 큰 책임으로 다가왔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게 했다. 한 때는 장사를 접을까 싶을 정도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고.
“초창기에는 매출을 올리는 데만 집중했어요. 그게 화근이었죠. 무조건 팔면 남는다는 생각으로 과자든 음료수든 거래처가 필요한 것들을 구해드렸는데, 업체들이 외상을 하곤 돈을 내일 줄게, 다음 달에 줄게, 이번엔 꼭 줄게 하면서 사람을 미치게 하더라고요. 저는 매입처에 돈을 갚아야하니까 재고도 떨어가면서 가게가 많이 힘들어졌어요. 그때 못 받은 돈을 합치면 빌딩 한 채는 세웠을 거예요.”
어려운 시기에도 그의 가족들은 ‘인생공부라 생각하고 조금 더 버텨보자’며 지지해줬고, 덕분에 조금씩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수금 불량 업체를 미리 가려내는 것은 어렵지만, 최대한 한 달 안에 결제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친절과 정직’ 바탕으로 원스톱 서비스가 목표

 
고객을 우선하는 마음은 용건재의 장점. 여름이면 제빙기를 두어 오시는 손님마다 얼음물과 커피를 제공하고, 일정이 촉박한 현장에는 작은 물건 하나라도 직접 갖다드린다. 당장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상품으로 바꿔드리는 등 고객 입장에서 배려하기 위해 노력한다. 용건재는 찾는 고객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 연중 명절 하루씩만 문을 닫는다. 지역에 몇 안 되는 공구상이기도 하지만, 주말에도 연다는 소문이 나 늘 평일처럼 손님이 올 때가 많다.
“일요일에도 문을 못 닫아요. 가게 옆에 가정집이 붙어있어요. 주말이든 한밤중이든 어느 집 수도관이 터져도 저희가 여기 있으니까 손님이 와서 문을 두드리세요. 그러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필요한 물건을 찾아드려요. 지역에서 오래 운영해오니까 믿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어떤 손님은 공주시로 멀리 이사 가고 나서도 친절하다고 매번 우리 매장만 방문을 하신대요.”
용건재는 앞으로 원스톱 서비스를 위해 품목을 더 늘리는 것이 목표다. 큰 꿈이 있다면 미국의 하드웨어 매장이나 다이소처럼 넓은 공간에 건축자재, 생활용품, 사무용품을 갖춰 더 다양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는 것. 
“‘친절과 정직’의 초심을 잃지 않고 고객 한 분 한 분 정성을 다하며, 가격으로 장난치지 않고 좋은 제품만을 고객에게 제공하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자연스럽게 손님들이 용건재를 찾아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글·사진 _ 장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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