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인 칼럼] 세일즈의 시작은 오픈 마인드

 

세일즈의 시작은 오픈 마인드

 

처음부터 공구업계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나는 어느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다 좋은 조건을 가지기 위해 하루 하루 성실했던 세일즈맨이었다. 우유와 생수를 팔던 세일즈맨이 전동공구 판매하게 된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세일즈 노하우 분석 파악하자


영업은 꿈꾸지도 않았다. 대기업 본사에서 서류와 차트를 보면서 시장 분석하는 일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인생은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재미난 점이다. 나의 첫 사회생활은 이름 들으면 누구나 아는 우유회사였다. 갑작스럽게 발령이 난 영업팀에서 선배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첫 사회생활을 한 기억이 난다. 당시 IMF가 끝난 직후인 1999년이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컴퓨터로 다양한 보고서를 쓰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누군가에게는 허드렛일이고 누군가에게는 노하우를 배우는 일이다. 나는 선배들의 보고서를 작성해주면서 세일즈 노하우를 배우기 시작했다. 철저한 시간관리, 인간관계를 토대로 하는 세일즈 방법을 곧바로 내게 적용했다. 그해 최우수 사원으로 인정 받았음은 물론이다. 세일즈를 잘 하고 싶다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영업을 하는지 살펴보길 바란다. 자신이 속한 분야의 1인자들은 무언가 노하우가 있다.  

 

새로운 도전은 세일즈맨 숙명

 
“조금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다”라는 오프라윈프리의 명언이 있다. 나의 영업 또한 이러한 작은 도전들의 역사다. 모두 이름만 들으면 아는 대기업에서 지금 이곳 밀워키까지 ‘성장 가능성’은 항상 스스로를 점검하고 인생의 기로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왔다.
첫 직장이었던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우유를 판매하는 세일즈맨으로 남았다면 평범하게 살아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레드오션인 우유시장에서는 나의 성장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꿈꿨다. 도전이 마냥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흙수저출신인 나에게 안정적인 곳은 별다른 굴곡 없이 살아가기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에 목말라있던 나에게 도전은 숙명과 같았다. 
퇴사 후 영어가 부족했던 나는 고3시절 처럼, 하루 12시간씩 영어학원에서 공부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갔다. 마침 운 좋게 글로벌 외국계 회사가 한국 생수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면서 내게 입사 제의가 들어왔다. 대동강 물 팔아 큰 돈 버는 봉이 김선달을 꿈꾸며 외국계 기업에 입사했다. 그런데 글로벌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진출 장벽이 매우 높았다.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도전하는 세일즈맨답게 잃을게 없다는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우선 주변 상황을 예리하게 파악했다. 일일이 소매점을 찾아가는데 한계를 느껴 인터넷을 통해 우리나라 음료사업에 관한 데이터를 구해 분석적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현장의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엄선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대리점 사장님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런 체계적인 접근 방식이 쌓이고 쌓여 또 한번 시장에서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어냈다.
다시 말해 무모한 도전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영리하고 전략적으로, 그리고 패기 있게 시도해보자. 나아가 도전을 앞두고 있는 세일즈맨분들께 꼭 자신의 실적, 자신의 능력을 믿으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조차도 나를 믿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유연한 생각과 행동, 카멜레온이 되자

 
세일즈맨이라면 상황과 사람에 따라 나를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경제는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난다.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사람에게 다가가 호감을 얻는 것은 필수다. 특유의 붙임성과 친화력를 갖고 나를 상황에 맞춰 변화시켜보자.
일례로 나는 영업시간을 유연하게 대처했다. 대리점 사장님과의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새벽, 늦은 밤 마다하지 않고 꾸준히 찾아갔었다. 새벽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시는 사장님의 조수석에 앉아 이야기를 했었다. 또 나의 취미생활도 새롭게 시작했다. 골프를 좋아하신다는 대리점 사장님을 설득하기 위해 입사 5년차에 당장 골프를 시작했었다. 그 당시 벌써부터 골프를 치냐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있었지만, 간절한 마음과 빠른 행동력으로 사장님과 2주만에 필드를 나갔다. 당연히 실력은 처참했지만 나의 진심과 노력이 통해 좋은 세일즈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요즘 더욱이 자신의 정체성과 나다움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대이다. 자신의 색깔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나다움 속에서도 아집은 버리고, 융통성 있게 사고하고 행동해보자. 미국의 유명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말한 것처럼 바람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똑같이 항해하는 선장은 결코 항구에 들어가지 못한다. 유연한 태도를 통해 모두 목적지까지 성공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큰 동력을 갖추길 바라본다. 

 

전동공구 업계의 러브콜 받아

 
어느 순간 나는 새로운 외국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한국 시장에 안착 시킨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 전동공구 브랜드가 나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인생은 정말 찰나의 미학이다. 이 도전이 내 영업인생의 최전성기를 가져다 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식음료에서 배운 영업을 전동공구 시장에서 꽃피운 것이다. 2008년 내가 처음 전동공구 시장에 들어서는 당시에는 고전적인 대형 브랜드가 양강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나의 미션은 분명해 보였다. 이 판을 깨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이를 일컬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세일즈맨은 시장을 멀리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최종 소비자,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창조적인 파괴를 생각했다. 기존 브랜드의 이미지를 파괴하고 기존 대리점과의 관계보다 새로운 대리점과 새롭게 시작하는 미래 지향적인 세일즈를 추구했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새로운 도전에는 언제나 저항이 따른다. 그 저항을 극복하느냐 아니냐를 통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제품의 성능과 함께 브랜드의 정체성과 자부심도 팔아야 하는 시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밀워키를 선택한 이유다. 

 

밀워키의 대체 불가능함을 믿어

 
지난 영업생활 속에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열심히’ 뿐이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고 나니, 나에게도 선택의 안목과 기회가 주어졌다. 그 기준은 비전과 제품력이었다. 이제 ‘열심히’는 내 팀원의 몫이 되고 나는 방향과 책임을 짊어지는 영업책임자가 되어 있었다. 나의 역할은 문제의 해결사이고,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마법사여야 하는 것이다. 젊은 팀원들의 패기와 객기를 구분해 줘야 되고, 불확실한 선택의 기로에 선후배들의 확신이어야 한다. 이런 역할을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했다. 그것이 밀워키였다. 이 선택에는 밀워키가 추구하는 제품의 이상향이 나와 일치하는 부분이 컸기 때문이다. 내구성과 파워를 추구하는 밀워키 제품에는 단순히 최고의 제품이 아니라, 밀워키만 대안이라는 자긍심이 있다. 나는 이것을 감히 ‘최고를 넘어, 단지 밀워키(Beyond No.1, Only One)’ 라는 다소 거창한 문구로 대변하고 싶다. 비록 이제 2년을 넘긴 짧은 밀워키맨으로서의 영업 삶이지만, 지난 20년 영업인생을 녹여 도전을 계속할 것이다. 성장을 향해 거침없던 첫 영업사원 때의 마음으로, 이제 다시 ‘salesman’이다.

 

글 _ 김진현 / 진행 _ 한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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