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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발행인 칼럼] 변화에 적응하는 종

 

변화에 적응하는 

 

 

공구상 50년을 하면서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았다. 처음 행상으로 시작해 소매상, 또 납품도매상으로, 
나중엔 종합상사로 변모했다. 환경적 변화가 왔을 때 나와 내 사업 또한 기꺼이 변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최근 방문한 영남대 도서관에서. 이곳도 학생들의 요구에 맞춰 카페처럼 변화했다. 

 

행상에서 소매상으로


1971년 대구 서구 원대주차장에서 점포 없이 공구행상을 했다. 하다 보니 점포에 들어가 장사하고 싶어졌는데 얻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자동차 부품상이 있어 그집 사장님께 “공구진열장 하나 두면 안될까요?”하고 요청했다. 목이 좋아서인지 장사가 꽤 잘 되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니 그만 나가달라 했다. 행상만 하다 겨우 자리를 찾았는데 큰일났다 싶었다. ‘또다시 어디로 갈까’하며 찾고 있는데 옆집 철물점 사장이 “우리 점포 사지 않을래?” 했다. 덥석 인수하였다. 1971년 12월 14일 개업이란 걸 하고 전화도 넣었다. 처음으로 ‘책임보장공구사’ 상호를 달았다.

 

소매에서 납품과 중도매로


3년간 소매상을 했다. 손님들이 줄지어 오고 버스손님, 주변상가 손님, 버스에서 내리는 손님 등으로 가게는 잘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또 주차장이 옮겨간다는 것이다. 매출이 1/4로 줄어버렸다. 현재의 터에선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 이전한 주차장을 따라갔다. 그곳은 일반손님은 잘 오지 않는 곳이었다. 궁리 끝에 ‘기다리기보다 찾아가자’ 했다. 김천, 상주, 예천, 영주, 안동, 의성 등에서 철물상 공구상 하는 분들이 대구로 와 공구를 사가는 것이었다. 그들을 위해 중도매를 해보기로 했다. 이것이 납품과 중도매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잘되던 방식만 고집하고 있었다면 지금도 여전히 소매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옮겨간 곳은 소매를 할 수 없는 지역이라 거기에 맞춰 사업방식에 변화를 줬다.

 

변두리에서 중심지로


어느 정도 사업을 하자 공구의 중심인 북성로로 오고 싶어졌다. 1980년 당시는 공구상은 점포가 너무 크면 안된다 할 때였지만, 나는 자동차 전시장을 하던 북성로 넓은 매장으로 이전했다. 이 정도 큰 공구상은 우리나라엔 없었다. 가진 공구를 다 진열해도 자리가 남아 빈 박스를 전시할 때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매장이 크니 손님들도 많이 왔다. 넓게 차려 꿈도 넓고 크게 펼쳐보는 게 맞았다. 공구상사 중 처음으로 자동문도 달고 입구에 화분을 놓으며 근사하게 매장을 꾸몄다. 누가 봐도 크고 잘되는 공구상, 그 모습에 맞추기 위해서는 사업방식의 변화가 또 필요했다. 

 

 

매장크기에 만족 NO… 업무방식 바꾸자


90년대가 코앞에 다가왔고 개방화의 시대가 예상된다 했다. 더 이상 넓은 매장이 핵심역량이 될 순 없었다. 사업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많은 거래선과 품목, 그리고 제반 회계 관리를 위해 회사 내에 필요한 것은 전산화였다. 80년대 중반부터 전산화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몇 번의 실패 끝에 1989년말 회계관리의 전산화를 이뤘다. 이 전산화는 현재 IT로, 빅데이터로 이어지며, 공구업의 디지털화를 이룬 단초가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나 싶을만큼 나 자신이 기특하지만, 어쨌든 머물기보다 좀더 다른 방법을 찾고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국제화시대, 무역 해볼까


88올림픽 이후 세상은 급속도로 변했다. 국제화의 물결이 거셌다. 1990년 3월 해외시장을 찾으러 다녔다. 처음 일본을 방문해 거래를 하려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이름있는 브랜드들은 대리점이 정해져있었다. 대만으로 발길을 돌렸다. 당시 대만제품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낮았다. 한번 쓰면 부서져버리는 대만산 DIY 제품이 한국에서 팔리고 있어 고객들은 그냥 줘도 안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대만에서 보니 품질좋은 제품들이 꽤 있었다. 처음 연결된 곳은 지니어스였다. 그러나 다른 브랜드는 만만하지 않았다. PB상품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닿았다. 

 

자사 브랜드 개발… 시장다양화와 고객요구 충족


PB업무는 무엇보다 디자인을 잘 해야 하고 수량과 품질관리가 꼭 필요한 분야였다. 여러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무엇보다 품질관리를 엄하게 했더니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 과거엔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 브랜드들이 우위를 차지했지만, 2000년대 이후 이 브랜드들의 실제 생산은 아시아국가에서 되고 있다. 따라서 품질과 가격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디자인을 잘 한다면 얼마든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무역을 통해 들어온 제품들은 국내시장의 다양화와 소비자의 요구충족이라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제 우리회사 전체 매출의 30%를 넘어서는 효자가 됐다. 그만큼 시장주도력과 안정적인 수출입관리로 들어섰다는 말이다. 그때 만약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무역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북성로에서 가장 큰 가게, 매장 넓은 공구상으로 머물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달라지는 시대, 변화점을 잡아라


최근 나는 시대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한번 더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물류에 대한 숙제도 풀어야 하고, 빅데이터로, 메타버스로 변화해가야 한다고 본다. 물론 기술적인 세세한 부분까지 내가 다 알지 못하더라도 정확한 방향만 짚으면 일은 전문가들이 해낼 것이다. 파고를 넘어 항해할 길을 선장은 알고 있어야 한다.
“살아남은 종은 우수한 종도 아니고 강한 종도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종만이 살아남는다.”

-찰스다윈-
큰 변화가 오고 있다고 느끼기에 이 칼럼을 쓴다. 달라지는 시대에 달라지는 공구업의 역사를 여러분들이 함께 써내려가길 바란다. 사랑하는 내 공구업이 지속되기를, 그래서 여러분들이 각자의 사업에서 규모와 지역에 맞게 잘 운영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워말고 변화해야 한다.

 

 _ 발행인·크레텍 대표이사 최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