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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백열전구 회사의 변신 일광공구

 

백열전구 회사의 변신 MZ 감성자극 조명으로 히트

 

일광전구 김홍도 대표

 

 

 

 

국내 유일하게 남은 백열전구 회사에서 단 하나의 고급 조명 회사로 전환한 기업. 끊임없이 트렌드를 읽고 시장의 틀을 깨며 성장하는 일광전구는 인류 역사에 절대 사라지지 않을 ‘빛’에 대한 철학이 있다.

 

 

디자인 회사가 아니라 제조회사라고?


1962년 대구 서구에서 출발해 현재 성서공단에 자리 잡은 62년 대구 토박이 전구 회사. 일광전구 사옥은 기업 정체성을 담은 전구 아이콘과 고딕체 로고가 그려진 스테인리스 간판 뒤로 경영 가치관이 새겨진 공장 외관이 독특하다. 나무 벽면이 인상적인 사무동과 옥상에 걸린 전구들이 아늑함과 세련미를 더한다. 여길 방문하는 사람들은 보수적일 것 같은 지역의 공장단지에 디자인을 강조한 회사가 있다는 것에 놀란다.


“회사 리브랜딩을 하면서 사무동을 리뉴얼 했어요. 일반 건축가가 아닌 인더스트리얼 아티스트 최상흠 작가에게 맡겼죠. 요구사항은 단 하나였어요. ‘사무실스럽지 않아야 한다’.”


평범한 컨테이너 사무실이 작가의 손에서 예술적으로 구현됐다. 1, 2층이 트인 복층 구조로, 따뜻한 색감의 조명이 가득 전시된 사무공간을 보면 디자인 회사인지 제조회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김 대표의 사무실은 조명등 아래 큰 테이블과 소파, 노트북을 둔 스탠딩 책상, 벽면에 붙은 화가의 그림과 바닥에 진열된 진공관, 손님을 위한 커피머신 등 고급스러운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면 떠오르는 전구처럼, 영감을 주는 공간이다.

 

백열전구는 모닥불 원리서 출발, 영원할 거라는 확신


일광전구 김홍도 대표는 34세에 운수회사를 운영하다, IMF를 맞으면서 어려워진 부친 김만규 회장의 전구 제조공장을 1998년, 39세의 나이에 이어받았다.


“일광전구는 1960년 대구 서문시장에서 전업사를 하시던 부모님이 한 전구공장을 인수해 설립하신 회사예요. 저는 90년대 마이카시대에 파산 직전의 운수회사를 인수해 3년간 정상화를 시켰고, IMF가 터지면서 대중교통 이용이 증가하며 현금 수입이 30% 늘어 대박이 났죠. 반대로 부모님의 전구공장은 위기를 맞은 상황이었어요. 아버지께서 ‘문을 닫을 작정이다. 너가 이어받는다고 하면 물려주겠다’고 하셨어요. 당시 경영에 자신감 있고 혈기 왕성했던 저는 바로 전구제조에 뛰어들었죠.”
90년대 전구 시장은 중국산이 밀려오면서 수출길은 막히고 내수시장이 치열했다. 게다가 IMF 여파로 월 100만 개 생산하던 물량은 1/3로 줄고, 매출이 없어 자금이 막힌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때 김 대표는 조명의 근본에 대해 고찰했다.


“1879년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만든 원리는 모닥불에서 나왔어요. 100년 넘게 이어진 백열전구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도 영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생산 효율화 위해 조립 전문 체제로 


김 대표는 사업을 승계하는 대신 부모님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물려받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리고 최신 설비를 갖춘 공장을 지어 2002년 대구 성서공단으로 확장 이전한다. 생산 효율화를 위해 유리구 만드는 공정을 없애고 협력업체로부터 부품을 가져와 조립과 품질관리만 전문으로 하는 방식으로 바꾼다. 또한 방과 거실에 쓰는 형광등, 부엌과 욕실에 쓰는 백열전구는 같이 팔린다는 점에 주목해, 형광등만 제조하는 업체에 싼 가격으로 백열전구를 공급하면서 월 100만 개 생산을 금세 회복시킨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00년대 이후 LED 조명이 등장하면서 전구 시장은 또 다른 도전 앞에 놓이게 된다.
“LED는 백색 빛으로 밝고 효율이 높아요. 하지만 백열전구와는 쓰임이 다릅니다. 따뜻한 주황빛 전구만이 주는 감성과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유럽 가정에서 쓰는 전구는 백열전구 광색인 2700K를 넘지 않습니다.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백열전구를 쓰는데 이 불빛 아래 사진이 잘 나오고 음식이 제일 맛있어 보이죠. LED와 백열전구는 생산 방식도 완전히 다릅니다. 한때 저희도 디지털 램프를 개발했다가 실패했는데,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LED는 중국 양산 제품과 경쟁이 너무 치열하거든요.”

 

 

가정용 백열전구 퇴출 위기, 장식용으로 전환


사업은 변화의 연속이었다. 2000년대 말, 일광전구에게 또 한 번의 거대한 위기가 찾아온다. 2007년 세계 G8 정상회의에서 에너지 효율이 낮은 백열전구를 2012년까지 퇴출하자는 권고가 결의된 것. OECD에 속한 우리나라 정부도 2008년, 가정용 백열전구 생산과 수입을 2014년부터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백열전구가 흥미로운 점은 산업화 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유리구 안에 탄소섬유 필라멘트를 태워 빛을 내는 원형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거예요. 가정용 백열전구는 세계 모든 나라가 다 쓰고 있고요. 한마디로 이슈화시키기 좋은 거죠. 그런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봐요. 시대의 흐름이 그러니 우리도 따라가야 할 수밖에 없죠. 백열전구가 완전히 퇴출되기까지 5년간 사업을 전환했어요. 가정용이 안된다면, 장식용 백열전구로 가기로 한 거죠.”


백열전구 퇴출 발표 이후 국내 백열전구 회사는 거의 다 문을 닫게 된다. 하지만 일광전구는 남들이 디지털로 갈 때, 오히려 ‘아날로그’로 갔다. 기업 가치관도 재정립했다. ‘우리는 빛으로 세상에 공헌한다. 글로벌 넘버원 백년 장인기업이 된다. 삶에 온기를 주는 빛을 개발 공급한다’. 빛은 사라지지 않으므로 불가능한 길은 없고, 시대에 맞춰 시장을 개척해나가면 된다, 일광전구의 철학이었다.

 

클래식 전구 출시, 굿 디자인 어워드 수상


장식용 백열전구 회사가 되기로 한 일광전구는 2012년, 미국 뉴욕 고급 상가의 전구에서 영감을 얻어 클래식 전구 시리즈를 출시한다. 이때부터 디자인의 중요성을 느낀 김 대표는 첫째 딸의 소개로 연이 된 권순만 디자인팀장을 영입한다. 전구는 김 대표가 설계해 OEM으로 제작하고, 패키지부터 전체적인 브랜드 리뉴얼은 권 팀장이 맡았다. 서울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과거 세계적 공산품 디자인 경력이 있는 권 팀장은 일광전구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리브랜딩’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광전구의 로고부터 제품, 홍보물까지 모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갔다. 패키지의 경우 생산자 위주의 용어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누구나 알기 쉽도록 제품군별로 심볼화, 텍스트는 간략화했다. 2014년에는 일본 ‘굿 디자인 어워드’에서 클래식 전구 리뉴얼 패키지를 출품해 전구회사로서는 세계최초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취향과 디자인 중시하는 MZ세대가 주고객


클래식 전구 시리즈가 인기를 끌자, 이번엔 중국에서 카피 제품이 들어와 더 싸게 팔리기 시작했다. 전구 판매만으로는 전망이 어둡다는 결론에 이르자, 향후 사업 방향으로 생각해두었던 조명기구에 도전하기로 한다. 조명 시장은 브랜드 제품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일광전구는 2016년부터 디자인 조명기구 시리즈 IK를 구상했다. 초창기 시행착오를 거치며 마케팅의 중요성도 느끼게 됐다.


“전구공장 시절에는 바로 도매로 나갔기 때문에 영업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어요. 대표 혼자 영업을 다녀도 충분했죠. 기존이 B2B였다면, 장식용 조명으로 바뀌면서는 타깃 소비자를 대상으로 어필하는 B2C 영업이 필요했어요. 몇백 원짜리 전구에서 몇십만 원짜리 조명을 팔아야 하는 일이에요.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필요한 고객이 찾아오게 해 판매로 연결을 시켜야 해요.”


2020년 말, 권 팀장의 설득으로 마케팅팀이 신설되며 김 대표의 아들 김시연 씨가 일광전구의 마케팅 팀장으로 합류한다. 3세 경영 준비기도 했다. 김시연 팀장은 군대에 가기 전부터 가업을 이어받겠다 결정하고, 건설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경력을 쌓았다. 김 대표는 승계를 일찍 결정해야 아들이 군에서의 생활이나 이후의 어려운 사회생활도 모두 사업에 필요한 경험으로 여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마케팅팀은 디자인팀과 함께 서울에 자리를 잡고 SNS 운영, 29CM 등 편집숍 입점, 롯데칠성 등 브랜드 협업 팝업스토어, 인천에 위치한 쇼룸인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 운영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신만의 공간에 취향을 담고, 디자인에 민감한 MZ세대 고객이 주 타깃이다. 온라인에 친근한 세대를 위해 유통방식도 온라인을 주로 하고 있다.

 

 

일광전구의 미래는 ‘아트’에 있다


일광전구는 조명기구만 만드는 회사와 달리 여러 가지 광원을 활용하는 60년 전구 노하우가 있다. 누구보다 빛을 잘 알고 있기에 조명기구 시장에도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가정용 백열전구에서 장식용으로, 디자인을 더한 하이엔드 조명기구로 전환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기업을 계속 성장시켰다. 2022년 10월, 국내 전구 자재회사가 사라지며 백열전구 생산은 중단했지만 5년간 판매물량은 확보해 두었다. 이후 중국, 인도 등에서 자재를 조달할 계획도 있다.


“일광전구의 미래는 ‘아트’에 있다고 생각해요.”


촛불모양의 ‘캔들’, 도토리와 개구리를 닮은 ‘에이콘’과 ‘프로그’, 마스터 에디션 ‘아폴로’ 등 개발을 거듭해 현재 생산하고 있는 조명 품목은 200여 개. 같은 제품 안에서도 고객 기호에 따라 다섯 가지 내외의 색상을 출시해 각각의 부품과 박스를 제작한다.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이다. 젊은 세대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트렌드에 따라 신제품도 매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하나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마케팅팀의 철저한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디자인팀의 제품 도면 제작, 개발팀의 시제품 제작과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수많은 수정작업을 거치고 있다. 2021년 말 내놓은 스노우 시리즈는 국내 디자인 조명으로서 최고의 히트상품이 됐다. 동그랗고 납작한 눈사람 모양으로 유리구에 바람을 불어 수제작하고, 바닥은 스틸과 크롬도금을 적용해 묵직함과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조명 밝기를 조절하는 디머 스위치는 송전탑 전깃줄에 걸린 항공장애표시구에서 모티브를 얻어 동그란 구 모양을 돌리는 방식으로 사용자에게 재미를 준다. 한 달에 몇백 개 팔리던 조명은 스노우맨이 출시되며 수천 개씩 팔리기 시작했다. 특히 요즘 핫한 버터색이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

 


마라톤하며 삶과 조명에 대한 감각 일깨워


김 대표의 사무실 테이블 옆에는 수많은 메달이 걸려있다. 각국의 마라톤 풀코스 완주 메달이다. 왜 달리느냐 물었다.


“저는 마라톤을 좋아해요. 세계 험난한 마라톤을 찾아가 달립니다. 아무 장비 없이 옷을 벗고 뛰다 보면 소위 원시적인 감각이 깨어나거든요. 세계 곳곳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체험해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죠. 유럽을 여행하며 현지의 조명산업을 직접 보고 나서는 조명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백열전구는 절대 없어지지 않겠구나. 인류가 불을 발견한 역사가 200만 년이 됐잖아요. 전구는 이 작은 모닥불에서 시작됐고요. 공구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돌도끼에서 시작해 인류의 발전이 공구예요. 앞으로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봐요.”

 

살아남으려면 시대 흐름 따라가야


김 대표는 우리나라 조명산업을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에 비유했다. 과거에는 모든 집이 형광등으로 통일됐고, 조명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축 아파트에 형광등과 백열전구 사이의 온백색이 점차 쓰이고 있다. 특히 코로나 시기부터는 공간에 대한 애착이 커지고, 인테리어에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조명은 공간의 분위기를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다. 요즘은 혼자 사는 집에도 100만 원짜리 조명을 단다. 그는 앞으로 원하는 대로 색온도를 조정할 수 있는 조명의 시대가 열린다고 전망했다. 그리고 기업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은 시대에 적응하지 않으면 죽음이에요. 팔리는 물건을 팔아야 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올해로 8번째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참가를 준비하고 있어요. 거기서 새로운 디자인 조명을 출품하고, 올해부터는 해외수출을 위해 외국에서도 인지하기 쉬운 새로운 브랜드명을 만들어 도약하고자 합니다. 트렌드는 계속 바뀝니다. 세상의 흐름이 그렇게 간다면 우리는 또 바뀌어야죠.”

 

_ 장여진 / 사진 _ 이창우(모임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