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연세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김종배 교수
- 전신마비 몸으로 미국 피츠버그대학 유학 후 교수 임용
- 마비환자 불편함 해결하는 작업치료 및 재활공학 발전기여
갑작스러운 사고나 뇌졸중과 같은 병으로 일반인도 전신마비가 올 수 있다. 전신마비 환자들은 재활치료를 통해 장애의 불편함을 극복하거나 회복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재활은 물리치료 및 작업치료로 이루어진다. 한국 작업치료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김종배 교수를 만나보자.
평범한 사람도 갑자기 찾아오는 사고나 뇌졸중 같은 병으로 마비 환자 혹은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이런 마비환자 및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이 물리치료와 작업치료. 그리고 재활공학이다. 우리나라는 물리치료가 작업치료보다 먼저 보편화되어 작업치료보다 인지도가 높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가 되고 치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작업치료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동시에 장애인 및 고령 환자를 위한 재활공학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연세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김종배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물리치료는 근육의 강도를 높이고, 관절의 가동범위를 증가시키며 균형과 자세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죠. 반면 작업치료는 일상생활에서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합니다. 전신마비 장애인은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어요. 작업치료사는 그들의 자립적인 생활을 위한 기술을 가르치죠. 재활공학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술적이고 공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분야입니다. 다양한 보조기기 및 기술적 장치를 개발하고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재활은 꼭 의학적으로 치료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술이나 환경을 통해 어떤 작업을 다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재활이죠. 저는 제가 가진 기술과 지식으로 작업과 활동을 회복할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고 있죠.”
1961년생의 김종배 교수는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영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처럼 그도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자동문이 열리는 연구실에서 연구를 한다. 휠체어를 타고 장애인 재활에 필요한 연구 및 활동을 하는 것. 그의 연구로 장애인 이동 및 접근성 개선을 위한 휴대용 경사로 개발, 욕창 예방 방석, 식사보조로봇, 그림도우미 기기, 스마트폰 거치대 등 다양한 보조기기가 개발되었고 그 결과 장애인 삶의 질이 향상 되었다. 2020년에는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원격 재활연구, 정보통신기기 개발 등의 공로가 인정되어 녹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작업치료와 재활공학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어요. 작업치료는 환자가 보조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을 제공하고, 재활공학은 그에게 필요한 보조기기나 기술을 제공하죠. 두 가지 분야가 협력하면 장애를 가진 사람도 기능적인 능력을 최대한 향상시킬 수 있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전신마비 장애인도 일반인처럼 자유롭게 이동 할 수 있죠. 재활공학의 발전으로 중증 장애인도 자동차 운전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다만 그 기술이 세상에 널리 퍼지는 것은 또 다른 과제이고 문제더군요.”
김종배 교수는 자신이 재활공학 박사가 되고 또 연구를 계속하는 일은 숙명이라 말한다. 과거 그의 20대 모습은 지금과 달랐다. 지리산을 4번이나 등반 할 정도로 활동적이고 튼튼한 청년이었다. 그랬던 그는 카이스트 산업공학 석사과정 중 불의의 추락 사고를 겪는다. 가슴 이하 전신이 마비되는 장애를 가지게 된 것.
“1985년 추락사고를 겪었을 때 제 나이가 만 24살이었어요.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재활병원이 없었거든요. 전동휠체어도 없었고요. 또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은 때라 산업공학을 전공했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저도 힘들지만 저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보는 것이 더 힘들었어요. 그저 부모님이 수동 휠체어에 저를 앉히시면 저는 책을 보는 일 말고는 할 것이 없었죠. 사고를 겪은 후 5년이 지나니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고 또 8년쯤 지나니 전동 휠체어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외부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하더라고요. 기술 발전이 중증 장애인인 저를 활동 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것이죠.”
그를 활동 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과학 기술이지만 그를 일으킨 것은 가족의 희생과 신앙심덕분이다. 그는 전신마비 판정 이후 찾아온 좌절감을 신앙으로 극복했다.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 열심히 살면 하느님은 아신다.’는 문구를 보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또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구절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신앙심과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의 헌신을 바탕으로 힘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아 올 수 있었다고.
“1990년대에는 전동 휠체어 덕분에 저도 사람들을 만나고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서 나와 비슷한 장애인들에게 컴퓨터 및 인터넷 교육을 했어요. 장애인 위한 정보 제공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고요. 또 중증 장애인들을 모아 공공근로사업 일을 따와 일하기도 했죠. 그 과정에서 재활보조공학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나이 40살이 되어 미국 유학길에 올라 피츠버그대에서 재활공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게 됩니다. 1988년 서울 장애인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로리 쿠퍼 교수가 저의 스승님이시죠. 그 과정에서 아내의 희생과 헌신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어요. 아내와 딸 덕분에 미국 유학의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었어요. 박사학위를 마친 후 귀국해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연구소에서 근무하다 연세대학교 교수에 임용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종배 교수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에 비해 장애인 복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말 한다. 공적자금의 지원 없이는 우리나라 재활공학 발전도 어려울 수 밖에 없다고. 전동 휠체어도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전액 보험 지원으로 좋은 제품 구매가 가능 한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일부금액만 지원한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과 시스템이 과거보다는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까지 한국사회가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좋은 기술을 반영한 훌륭한 제품을 개발해도 그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회사를 찾기 어렵거든요. 외국에서는 정부에서 제품을 구매하는데 많은 지원을 해줍니다. 그 결과 좋은 전동 휠체어 제작 회사는 해외에서 살아남는 것이죠. 장애에 대한 인식부터 우리가 바꿔야 합니다. 장애는 환경에 의해 결정되거든요. 제가 사고를 당했던 31년 전엔 장애인에 대한 우리나라의 환경이 지금과 매우 달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엘리베이터, 콜택시, 저상버스, 전동휠체어 등 많이 달라졌죠. 이제는 신체 조건이 아니라 환경과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 장애입니다. 재활공학으로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고 또 정부는 그것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장애인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고 하나의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거죠.”
중증 장애인인 그에게도 공구는 언제나 필요하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 보면 육각렌치볼트가 헐거워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접이식 육각렌치 세트를 가지고 다닌다. 헐거워진 볼트를 그대로 두면 안 되는 것처럼 어려움과 좌절이 있더라도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다. 어려움을 대비해 미리 미리 준비해야 이겨 낼 수 있다고.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또 그렇게 최선을 하다보면 길이 보이고 열립니다. 저는 재활도 우선 마음부터 재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환경이 따라 주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유학가기 전 저는 아내와 딸, 부모님의 헌신이라는 환경이 운 좋게 따라주어 강의도 하고 사업도 해보았죠. 그런 경험과 경력이 있어서 미국 피츠버그대학 유학도 가능했고요. 결국 모교의 교수로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좌절하더라도 쓰러지지 마세요. 도전하세요.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최선을 다해보세요. 부족하면 다시금 준비하고요. 도움도 받을 수 있으면 받으세요. 또 도움 받으려면 도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접이식 육각렌치를 가지고 다녀요. 헐거워진 휠체어 볼트를 조이기 위해서요. 공구를 준비해야 공구를 사용해 볼트를 조여 달라 할 수 있어요.”
김종배 교수는 지금도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중증 장애인이 혼자 침대에서 움직여 휠체어로 이동 하거나 휠체어에서 침대로 이동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오늘도 어려운 문제 해결을 위해 도전하고 있다. 암흑 같은 어려움이 찾아와도 노력하면 길이 보인다는 것을 그는 오늘도 증명하고 있다.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