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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공구인 에세이]

 

나는야 공구박사

 

강산기업 이기응 팀장

 

그림 _ 김수빈
영남대 산업디자인 학사/석사. 그림책 ‘오리 형제가 들려주는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를 쓰고 그렸다. 인스타그램 @sirimiri_illust

 

30년 직장생활 후 50대에 공구회사 첫 취직


나는 치매인 아내와 듬직한 아들 하나를 둔 대한민국 60대 중반 가장이다. 40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즐거움과 어려움과 시련을 겪으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태창 메리야스와 법무법인에서 근무하다가 집사람의 간병을 위해 퇴사하고 있던 중, 2013년 50대 중반에 아무 연관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공구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상공회의소에서 실시하는 50대 이상 취업 프로그램에 의한 소개로 청계천3가 소재 강산기업에 면접을 보고 입사를 했다.
30년 직장생활을 했지만, 공구 세계는 만만치 않았다. 입사 후 선임과 함께 청계천 내 거래 업체에 인사를 다니는데, 농담 반 진담 반 인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유를 알고 보니 오래 근무를 하지 못하고 몇 시간 만에, 하루 만에, 사흘 만에, 한 달 안에 그만두어, 계속 다닐 때 인사하자는 것이었다. 모든 일이 힘들지만, 청계천 일이 그중에서도, 강산기업 일이 힘들다고 하였다. 그러나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직원은 13명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러 명이다 보니 나이, 직책, 성격에 따라 각양각색 업무 형태로 분위기가 복잡하여 교육은 따로 없고 그냥 일하며 배우는 형식이었다.

 

아들뻘 대리에게 모진 말 들으며 배워


그러던 어느 날 아들하고 동갑인 모 대리가 2층에 가서 드라이버 비트 6-150을 찾아오라고 하여 2층으로 올라가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2-150은 있는데 6-150은 없어 망설이는데, 그 대리가 올라와 왜 이리 못 찾냐고 하며 2-150을 꺼내길래 “대리님 그건 6-150이 아닌데요.” 하니 “아니 형님은 2가 6인지도 모릅니까!” 하며 한심하다는 얼굴을 하며 돌아서서 하는 말 “같이 일 못 하겠네.” 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알려주지도 않고 모른다고 그렇게 표현하는 소리에 가슴이 아팠다. 이 정글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망설이다가 다음날부터 출고되는 제품 하나하나 순서대로 명세서와 제품을 같이 놓고 사진을 찍어 출근길, 퇴근길에 외우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공부를 시작했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 되니 업무의 흐름과 제품의 이름, 용도, 창고 위치가 머릿속에 남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전화 주문이 와서 “데꼬 있어요?” 하면 “없어요.” 하고, “지렛대 있어요?” 하면 “있어요.”하는 통화를 들었는데, 그 직원이 일본어 데꼬가 한국어 지렛대라는 것을 몰라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그래서 나는 같은 제품의 이름을 일본어, 영어, 한국어로 작성하여 업무에 활용토록 했다. 


청계천 영업 담당하며 수금방법 밤새 고민


잘 보이지도 않던 공구 가게, 철물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업무에 탄력이 붙으며 공구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그러던 중 상처를 준 모 대리가 외곽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 그가 맡았던 청계천 영업과 수금을 담당하게 되었다. 인수 받은 업체 중에 S 업체가 장기 연체 이백만 원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모 대리와 함께 연체업체에 찾아가 새로운 담당이라고 인사를 하는데 달갑지 않은 시선과 모 대리를 대하는 말과 분위기에 많은 갈등이 있음을 느끼고 정중히 인사만 하고 나왔다.
다음날 나는 혼자 S 업체를 찾아가 다시 인사를 하고 사장님께 연체에 대한 사연을 듣고 이제는 제가 왔으니 앞일은 잊으시고 저랑 말동무하며 지내자고 하고, 주문 주시면 바로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대화를 나눠보니 연배도 비슷하고 사장님 성품이 좋으셨다. 그래서 내가 밤새 생각한 제안을 말씀드렸다.

 

연체 업체 사장님에게 건넨 ‘꿀물친구’ 제안


“사장님 돈을 갚으실 마음은 있는 거지요?” 여쭤보니 당연히 갚아야 하나 기분도 나빴고 목돈도 없고 해서 지금 이 상황까지 왔다고 했다.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말씀을 드렸다. “사장님 제가 제안을 드리겠으니 잘 들으세요.”라고 하고 “사장님 이백만 원을 20개월 무이자 할부로 상환하시면 어떠신지요?” 하니 “난 카드 한도가 오버되어 안 된다.”라고 거절하셨다. 그래서 나는 “사장님 제 말씀은 카드결제가 아니라 우리 둘의 신용으로 매월 십만 원씩 갚으시라는 말씀입니다. 카드도 이자도 필요 없는 사장님과 저와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옵션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로 사장님께서 혼자 운영하셔서 외출이 어렵고 외로우며 소식에 둔하고 하니 가끔 와서 꿀물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친구가 되어드린다고 했다. 둘째로 월 상환금과는 별개로 주문 즉시 배달을 하겠으니 계속 거래를 하고 가격을 싸게 해드리면, 그 차액이 한 달 십만 원 갚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씀드렸다. 지금부터 거래는 즉시 결제 조건으로 말씀드리니 고맙고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동의하셔서, 다음날부터 열심히 배달하고 매월 25일 십만 원씩 수금하러 가서 꿀물 마시며 공구업계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 잃은 슬픔도 겪으며… 단단한 공구인으로 성장


어느새 23개월 만에 팔백만 원의 매출과 미수금 이백만 원이 완결되었다. 서로 기뻐하며 술과 담배를 못하는 사장님과 나는 꿀물로 축하했다. 참고로 나는 23개월 동안 꿀물 값으로 박봉에 48,000원을 지출했다. 그리고 계속 거래 중 어느 날 공구함을 주문해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갔는데 웅성웅성하고 사장님이 안 보여서 여쭤보니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가셨다고 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걱정하고 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흘 전 꿀물을 마시며 웃던 친구가 갑자기…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 아픔도 잊고 또 열심히 일했다. 산업용재협회 서울지회 총무로 3년간 활동하며 청계천을 누비고 다녔다. 물류팀장으로 승진도 했다. 한 해, 두 해, 10년… 어느새 나는 공구를 조금 아는 60대 중반의 ‘공구박사’가 되어 있었다.

 

출처 _ <제1회 산업용재 수필문학상> 응모 작품집 / 진행 _ 장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