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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경제 칼럼

 

옛날 디자인이 
더 예뻐 보이는 이유

 

성능이 뛰어난 제품들보다 빈티지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낡고 오래된 자동차, 음향기기, 가구를 보며 ‘요즘 것보다 예쁘다’, ‘감성적이다’, 
‘왜 요즘은 이렇게 만들지 못할까?’라고 말할까.

 

 

많은 이들이 반하는 빈티지만의 매력

 

나는 요즘 빈티지 물건의 매력에 흠뻑 젖어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모차르트의 실내악이 1958년에 생산된 진공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책상 한 켠에 놓인 1989년산 매킨토시에는 벽돌깨기 게임이 띄워져 있으며, 내 손목엔 중학생 때 흔하디 흔했던 카시오 전자시계가 오전 10시 48분을 가리키고 있다. 옛날 물건을 보고 눈을 반짝거리면서 ‘정말 예쁘다!’라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람은 나 말고도 아주 많다. 성능으로 따지자면 최신 제품이 훨씬 뛰어난데도 말이다. 왜 많은 이들이 낡고 오래된 제품에서 예쁘고 감성적이라는 느낌을 받을까?

 

옛 물건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향수’다. 사람은 과거를 떠올릴 때 실제보다 더 따뜻하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기억한다. 옛 물건을 보면 그 시대의 감정과 추억이 함께 떠오르기에 디자인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워크맨으로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하면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 길거리에서 들리던 소리, 심야 DJ의 목소리 등이 되살아나지 않는가? 워크맨을 허리춤에 차고 헤드폰을 끼고 자전거를 내달리던 그 순간, 첫사랑의 떨림과 그리움에 가슴 아프던 기억들. 이렇게 물건에 얽힌 추억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반면 이런 기억이 ‘묻어있지 않은’ 요즘의 기기는 그저 차가운 기계로만 보일 뿐이다. 과거로의 시간여행, 이것이 옛 물건이 주는 가장 강력한 매력이다.

 

익숙한 것에 끌리는 ‘단순 노출 효과’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도 주된 이유다. 이 효과는 익숙하다는 것 자체만으로 호감도가 올라간다는 것을 뜻한다. 오랫동안 보아온 디자인일수록 우리는 더 편안하고 예쁘다고 느낀다. 괘종시계, 다이얼 전화기, 주판 같은 물건들을 보면 ‘아, 맞아. 그때 이런 물건을 썼었지’하며 반가운 마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낯선 것보다 익숙한 것에 끌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서 오래된 디자인은 새로운 디자인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기능보다 형태와 개성에 집중

 

옛날 물건들이 기능보다 형태와 개성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것도 이유가 된다. 예를 들어, Sony의 초기 워크맨만 봐도 내부 설계뿐 아니라 외관 디자인에도 명확한 개성이 있었다. 색감, 버튼의 위치, 로고의 각인 방식까지도 ‘오브제’로서의 완성도가 있었다. 각 제품마다 고유한 정체성과 스토리가 담겨 있었고, 디자이너의 철학과 가치관이 물건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반면 요즘 제품들은 효율과 대량생산의 용이성을 위해 단순하고 비슷비슷한 디자인을 채택한다. 제조기술이 발달해 기이한 곡선이나 다양한 재질을 마음껏 구사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개성은 사라지고 획일화된 디자인이 넘쳐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예전에는 제조기술의 제약 때문에 디자인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많았지만, 그 한계 속에서도 디자이너들은 창의성을 발휘했다. 그래서 특별히 옛날 디자인이 더 ‘예뻤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더 ‘개성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핵심만 남긴 단순미

 

옛날 디자인이 상대적으로 단순했다는 점도 한 몫 한다. 기능이 한정되어 있었기에 디자인도 직관적이고 명료했다. 1970~80년대 생산된 자동차, 폭스바겐의 골프를 보라. 불필요한 장식 없이 깔끔한 직선과 사각형의 조화만으로 완성된 디자인은 지금 봐도 세련되고 아름답다. 핵심만 남긴 단순미가 오히려 시대를 초월한 미학을 만들어낸 것이다. 반면 요즘 제품들은 수십 가지 기능을 담다 보니 인터페이스가 복잡해지고 오히려 미적 완성도가 떨어질 때가 많다.

 

살아남은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

 

시간이 일종의 필터로 작용하는 것도 옛 디자인이 더 예쁘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살아남은 디자인은 대부분 ‘좋은 디자인’일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도 지금처럼 수많은 디자인이 있었지만, 미적 가치가 높은 것들만 사람들의 선택을 계속 받아왔기에 옛날 디자인이 더 예쁘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바우하우스(Bauhaus) 스타일의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못생기고 실용성 없는 디자인은 이미 오래전에 도태되어 사라졌기에, 지금 우리가 보는 옛 물건들은 자연스럽게 ‘선택받은 디자인’라고 말할 수 있다.

 

타인과 차별화하려는 동기

 

‘나와 타인을 차별화’하려는 동기가 옛 디자인에 끌리는 경향을 만들기도 한다. 웨이터로 변장한 심리학자는 손님들에게 에일, 라거, 페일에일, 바바리안 섬머 등 네 종류의 맥주를 설명한 뒤 주문을 받았다. 한쪽 테이블에서는 손님들이 차례로 맥주를 주문하게 했고, 다른 테이블에서는 메모지에 적어 주문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자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노출될 때, 사람들은 가능한 한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려는 ‘차별화 경향’을 보였다. 반면 메모지로 주문할 때는 겹치는 맥주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가진 물건이라면 구매 욕구가 떨어지는 이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스놉(snob) 효과’라고 부른다.
디자인과 성능을 자랑하는 첨단제품들은 언제든지 살 수 있을 정도로 흔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 게다가 오늘 산 물건이 내일이면 구닥다리가 될 정도로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다. 물건을 통해 남들과 다른 나를 드러내려면 돈도 돈이거니와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니 머리가 아프다. 이때 빈티지 물건은 아주 좋은 차별화 수단이다. 어쩔 수 없이 낡고 고장 나 버려지기 때문에 옛 물건의 희소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진다. 게다가 잘 관리된 물건은 가격이 계속 오르니 일석이조다. 이것이 남들이 가진 첨단 오디오보다 지글거리는 진공관 오디오 소리가 더 사랑스러운 까닭이다. 빈티지는 돈이 든다는 게 유일한 단점이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수백 년 잇는 디자인 만들어지길

 

옛날 디자인이 더 예쁘다고 말하면 요즘 디자이너들의 노력과 결과물을 폄하하는 것이라 오해할지 모르겠다. 대량생산에 따른 비용과 효율, 급변하는 소비자의 취향 때문에 창의성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현실이 요즘 디자이너들의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해도 옛 물건을 발견하는 그 설렘을 언젠가 지금 만들어지는 제품에서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러 가지 한계를 극복해서 앞으로 수백 년 넘게 이어질 디자인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그러면 먼 훗날 많은 이들이 2025년의 제품을 보며 “옛날 디자인은 정말 예쁘단 말이야.”라고 탄성을 터뜨리지 않을까.

 

_ 유정식 / 진행 _ 장여진